고전을 가슴으로 즐겨라!

책을 즐겨 읽는 사람에게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라는 수고스러움이 늘 떠나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백 권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 현실에서 마음에 와 닿는 책을 만나는 것은 보통 인연(因緣)이 아니었다. 인연이 남다른 만큼 오래도록 곁에서 인생의 길잡이를 했다. 이런 책에 이름을 붙이자면 고전(古典)이라 할 수 있다.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아 지혜의 나침반 역할을 할 것이다.

고전의 놀라운 생명력은 누누이 강조되어 왔다. 그중에서도 이탈리아의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가 맴돌았다. 그는『왜 고전을 읽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즉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나는~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나는 지금~를 읽고 있어’라고는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 책.”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라는 말은 ‘유명 저작을 아직 읽지 않았음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의 궁색한 위선을 드러낸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작 고전은 외면을 받고 있다. 한 번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읽는 책이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고전이 고서(古書)로 내몰리고 있다. 더구나 동아시아에 사는 우리들에게 동양고전에 대한 무관심은 안타깝다. 이러한 까닭은 우선적으로 한문의 장벽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또한 원문을 쉽게 풀어 쓴다고 해서 그 의미마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서양고전만이 현문(賢問)이라는 자가당착의 풍랑에 휩쓸린 탓에 오히려 동양고전은 우문(愚問)에 빠져버렸다. 동양고전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었다.

이러한 편향적 사고의 모습을 지켜보며 전혀 색다른 훈장선생을 애타게 기다렸는지 모른다. 지난 날 전통사회에서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훈장 선생이 한문을 읽어주면 학생들이 우직하게 따라 읽었다.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고 할 정도로 많이 읽었다. 오늘날에는 이런 풍경이 ‘암기식 교육’이라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의문시하고 있다. 그러나 학문의 절실함을 간과하지 않았다면 위편삼절을 암기식 교육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신영복의『강의』는 예전에 본 듯한 비슷비슷한 책이 아니었다. ‘나의 동양고전 독법’이라는 부제에 알맞게 현대적인 훈장 선생의 생생한 숨결이 담겨져 있었다. 이 책에서 선생은 동양고전 독법의 혼란스러운 곁가지를 잘라내는 대신에 핵심을 짚어 말하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쉽게 기초를 닦게 하고 있다. 선생은 “마음에 드는 고전 구문을 선택해서 암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고” 권했다. 또 “한자나 한문 때문에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학보다는 그것에 담겨 있는 내용에 주목하면 충분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오늘날 동양고전 독법이 전혀 불가능하기만 한 게 아니라는 것을 설득력있게 제시해주었다. 그런가 하면 동양 사상의 미래 담론에 있어 “고전 강독은 결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닙니다. 우리의 당면 과제를 재조명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중대한 역할을 강조했다.